고삐풀린 생명공학 연구개발을 중지하라!
 

작년(1998년) 말부터 한국에서 생명공학의 화려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 행진은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복제실험에 성공하였다는 경희대 의료원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배아 복제의 윤리적 금기를 세계 최초로 깬 것일지라도, 일부 과학자들은 쟁쟁한 생명공학 선진국보다 먼저 이 기술을 정복하였다는 점만이 관심거리다. 곧바로 진행된 대한의사협회의 진상조사가 인간배아 복제실험의 윤리적 측면은 제외된 채, 실험의 성공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 실험에 이어 올해(1999년) 2월에 연속해서 유전자조작 작물 개발과 소 복제 실험 성공소식이 전해졌다. 2월 11일 농진청의 발표에 의하면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농업과학기술원의 연구개발 결과, 제초제 저항성를 지닌 유전자조작 벼를 비롯한 8종의 작물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농림부는 미국, 캐나다에 이어서 세계 3위의 농업기술 선진국이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특종보도한 신문은 故 윤동주 시인의 손자 며느리가 연구개발을 참여했다는 사실까지 들어가며 제 2의 독립운동인 양 묘사하기까지 했다.
이어서 2월 19일에는 황우석 교수팀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 소, 영롱(Young-Long)이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국 생명공학의 행진은 절정에 올랐다. 과학기술부는 소 복제 실험이 세계 5번째로 이루어진 것이며, 기술적으로 앞선 실험보다 우월하다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원한 G7 프로젝트에 의해서 '한 건' 올렸다는 점에 들떠서 그런지,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생명안전과 윤리를 걱정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자료 요청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시민과 생태계 안전 및 윤리적 혼란을 무시된 채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화려한 찬사 속에 생명공학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 영국과 유럽의 과학자들은 유전자조작된 감자를 먹힌 쥐에게 치명적인 면역이상 증세가 발생하였다는 실험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유전자조작 작물 재배와 식품을 금지하려는 기왕의 캠페인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은, 과연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어야 할 것인지 재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세계의 유수 과학잡지들은 유전자조작 작물들의 환경 속에서 노출되어 재배되었을 때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계속 보고하면서,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UN에서도 이와 같은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생명공학안전성 의정서(Biosafety Protocol)를 체결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은 생명공학이 예상치 않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엄격한 안전성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명공학의 윤리 문제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생명공학 연구개발과 사용에 따른 안전 및 윤리 문제를 다룰 법과 제도를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를 다루겠다고 약속한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은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인간배아 복제실험마저 허용하려는 시도마저 있을 정도로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또한 연구개발을 본격화되기 전에 마땅히 마련되어야 할 각종 실험안전지침, 환경평가지침, 식품안전평가지침, 복제실험의 윤리지침 등은 논의만 무성할 뿐이다.

국내 법이 마련되지 않아서 문제시되지 않을지 몰라도, 외국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유전자조작 벼를 비롯한 8종의 작물을 개발하였다는 논업과학기술원은 지난 해(1998년) 12월에야 공청회를 열어 연구개발에 필요한 온실 및 야외 시험재배의 안전지침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는 온실 및 야외 시험재배가 진행된 것은 적어도 1998년 봄부터다. 아무런 안전지침없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농업과학기술 연구의 성과라는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일인가? 과학자와 정부가 시민의 생명과 생태계 안전 그리고 윤리적 혼란을 담보로 연구개발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고삐풀린 말처럼 달리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작년말부터 갑자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생명공학의 행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행진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서 고삐풀린 말처럼 내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하에 생명안전과 윤리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는 무시한 채, 일부 과학자, 정부 그리고 언론들은 생명공학 발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로서는 세금을 통해서 연구개발비 대고 있는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명공학의 성과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일뿐인가?
우리는 생명안전 및 윤리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우려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아래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따라서 현재 아무런 안전규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모든 생명공학 연구개발을 일시 중지할 것을 과학자 사회와 정부에게 요구하며, 국회는 누더기가 되어가는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조속히 생명안전 및 윤리를 다루는 (가칭) 생명안전윤리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1. 생명공학의 안전성 및 윤리성 규제없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개발을 중지하라.

2. 생명안전 및 윤리를 외면하는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가칭) 생명안전윤리특별법'을 제정하라.
 

1999년 2월 25일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경실련 환경정의시민연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그린훼밀리운동연합,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연합, 불교인권위원회,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 모임,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모임, 청년생태주의자 KEY,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인권환경위원회, 환경운동연합